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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크론슈타트 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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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레스 강의 주인 (594~670) === 보이슬라프(594~619)는 주변의 다른 슬라브인 집단들을 굴복시키고, 정복한 집단의 사람들을 수로 공사에 동원해 흙에 묻힌 수로를 되살렸다. 수로가 살아나자 들판이 넓어졌고, 들판이 넓어지자 공작이 거두는 물세도 늘었다. 칼로 사람을 모으고, 그 사람으로 물길을 되살리고, 그 물길로 다시 칼을 먹이는 순환이 이때 시작되었다. 보이슬라프와 세미라의 아들 라도슬라프(619~641)는 두 계통의 피를 함께 이은 첫 공작이었다. 어머니에게서 옛 사랜드어를, 아버지에게서 슬라브어를 배운 그는 두 언어를 모두 썼다고 한다. 634년 라도슬라프는 빌베른 상인들과 '''베레스 협약'''을 맺어, 공국 안에서의 교역 특권을 빌베른 상인들에게만 주는 대신 공작이 거래액의 10분의 1을 통행세로 받고 빌베른제 철제 무기를 우선 사들이기로 했다. 이 협약으로 공국은 평원 서부의 어느 영주보다 많은 은과 좋은 무기를 갖게 되었다. 프로시고이(641~658)는 북쪽 고원에서 내려오는 [[고랜드]] 제후들의 약탈에 맞서 대수문 북쪽의 협곡에 성채를 잇달아 쌓았다. 블라스티미르(658~670) 때 공국은 베레스 강 상류와 중류를 모두 다스리게 되었다. 665년 여름 중류의 영주들이 연합해 공납을 거부하자, 블라스티미르는 한여름에 대수문을 40일 동안 닫았다. 연대기가 '목마른 여름'이라 부르는 이 일로 중류의 들판이 말라붙었고, 영주들은 가을이 오기 전에 모두 공작 앞에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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